2018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머지않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가 먼저 제안했다고 하지만,
실은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제안했다.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것이다. 가겠다고 했고, 오라고 했는데,
가지 않으면 되겠는가. 

남북정상회담은 빨리 가질수록 좋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나 같은 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이 수많은 의견이나 주장을 쏟아내며 북녘을 찾는 것보다 남북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몇 번 만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나아가 고위급회담을 여러
번 갖는 것보다 정상회담을 한 번이라도 갖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지난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아쉬운 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각’ 정상회담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며 평화를 정착시킬 훌륭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지만, 그를 실행할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4년 뒤 평화와 통일을 반대하는 수구극우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남북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이
될수록 빨리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른바 ‘여건’이 좋지 않다. 나라 안에서는 수구극우 정당과 언론이,
나라 밖에서는 미국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방해한다. 대화의 결과물로 나올 수 있는
북한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삼으란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멈추거나 폐기하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위협하는 미국과 남한의 군사훈련은
연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조차 안 된단다. 애꿎은 인권문제도 들먹거린다. 아예
만나지 말고 대화를 시작하지도 말라는 억지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의 평화
분위기를 정상회담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여건’ 가운데 하나가
이산가족 상봉 아닐까. 북한에 대한 최고 제제와 최대 압박 상황에서도 누구든지
반대하기 어려운 인도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수구극우 세력이 내세우는 것은 한미동맹 강화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한미군사훈련 연기나 축소,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재개 등 어떠한 것도
한미동맹을 훼손하면 곤란하단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또는 국가
이익을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할 국가 목표가
되어버린 셈이다. 따라서 이들의 반대나 방해를 무력화하는 것은 간단하다. 미국을
끌어들이면 된다. 이들은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미국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이 남한에서 군사훈련을 하지 않거나 남한에 첨단무기를
들여놓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보다 미국에 특사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는 배경이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북미관계는 몰라도
남북관계야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미국이 반대하고 훼방놓을 수 있는 수단과 힘은 넘친다.

그런데 미국은 남함이나 북한을 바라보고 대북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중국을
겨냥해 한반도정책을 입안하는 것이다. 21세기 미국의 제1목표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급속도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것인데, 여기에 남북한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강화하며 한미일 군사공조를 추구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고, 북한을 자극하며 오히려 ‘도발’을 부추기는 것도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2010년부터 미국을 제외한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군사 강국들보다 두 배 이상 군비를 지출해왔다. 2012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 무역대국이 되었다. 2014년엔 구매력 국내총생산 (GDP)으로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제1경제대국에 올랐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에게 1년 평균 3,500억
달러 안팎의 무역적자를 안겨주고 있다. 참고로, 최근 5년간 미국이 일본에겐
연평균 700억 달러, 남한에겐 250억 달러 정도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남한은 요즘 이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첫째는 유일한 군사동맹국인 미국과
최대의 무역상대국인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에 끼어 있다. 중국 견제 및 봉쇄를
위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과 이에 맞서는 중국의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anti-access and area-denial)’ 정책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미국이 남한에 고고도미사일방어망 (THAAD)을 배치한 게 생생한 사례다.
둘째는 1950년대부터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관계에
끼어 있다. 남한에게 미국은 오늘까지는 ‘혈맹’이지만 언젠가는 헤어질지 모를
‘남’이다. 북한은 아직까지 ‘주적’으로 삼고 있어도 언젠가는 더불어 살아야
할 ‘형제동포’다. 금세라도 북한을 폭격할 듯한 미국의 ‘코피 터뜨리기’를
포함한 ‘미치광이 전술’과 괌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까지 때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전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리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떻게 군형을 잡고 어떻게 자주를 취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보기 위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의 정책을 먼저 소개하고 남한의
길을 제시해본다.

1. 트럼프의 2017년 국가안보전략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2017년 12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NSS)>을 발표했다. 본문
55쪽의 문서다. 주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급속적인 경제 성장과 군사력
팽창을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해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도전자 (challenger)’로 명시한 나라는 넷이다. ‘수정주의 중국과
러시아 (revisionist powers of China and Russia)’ 그리고 ‘깡패국가 이란과
북한 (rogue states of Iran and North Korea)’. 이슬람 성전주의자 (jihad)를
포함한 초국적 테러조직도 포함했다.

 미국이 신경 쓰겠다는 지역은 세 곳, 인도-태평양, 유럽, 중동이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가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따르면, 중국은 이
지역에서 막대한 투자를 앞세워 미국을 밀어내려 한다. 그리고 남중국해에
전초부대를 세우면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막고자 한다.

이에 미국이 마련한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일본과 호주 그리고 인도와의
4각 협력 (quadrilateral cooperation)을 증진시켜” 중국을 봉쇄한다. 둘째,
어떠한 상대도 저지하거나 패배시킬 수 있도록 전진 배치된 군사력을 유지한다.
셋째, 동맹국들과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한다. 여기서 지역 방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본 및 남한과 미사일 방어에 협력할 것이란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싸드 (THAAD)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백악관과 국방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 (Joint Chiefs of Staff)
등에서 다양한 안보 및 국방전략을 수립한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 들자면,
<국가안보 전략 (National Security Strategy)>, <핵태세 검토 보고서 (Nuclear
Posture Review Report)>, <핵무기 사용 전략 보고서 (Report on Nuclear
Employment Strategy)>, <탄도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 (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 Report)>, <4개년 방어 검토 (Quadrennial Defense Review)>
등이다. 미국이 이렇게 다양한 안보 및 국방전략을 통해 중국을 제1경쟁자 또는
적으로 규정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중국을 ‘경쟁자
(competitor)’나 ‘도전자 (challenger)’ 또는 ‘적 (adversary)’으로 대놓고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미국 국방부는 2000년부터 100쪽 안팎의 <중국 군사 및
안보에 관한 연례 보고서 (Annual Report to Congress: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만들어 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의회가 국방장관으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의 중국 군사 전략에 관해
20년 동안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한 ‘국가 방위 위임법 (The FY2000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따른 것이다. 미국 행정부뿐만 아니라 의회까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압박하려는 데는 경제적 배경도 크다. <국가안보전략>이
밝히고 있듯, 중국은 전 세계를 땅길과 바닷길로 연결한다는 이른바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기반시설을 구축하는데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국가 주도의 경제 모델을 확산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불공정 무역을 확장하고 핵심 산업에
투자하며 전략적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20여년 전까지는
조그만 투자자였지만 지금은 가장 큰 무역 상대가 되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다루지
않았어도, 미국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1년 평균 3,50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다. 남한에 1년 평균 250억 달러 안팎의 무역 적자를 내는 게
불만스러워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다시 협상하자고 하는 터다. 중국에 공개적으로
무역 전쟁을 선포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미국이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빌미를
북한의 위협에서 찾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유엔 제재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며 압박해온 것이다. 중국 봉쇄의 명분을 찾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며 도발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7년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이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빌미로 삼아온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방치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에
국가안보전략 서두에서부터 ‘깡패국가 (rogue state)’ 북한을 16회나 언급하면서
주요 ‘도전자 (challenger)’로 꼽고 있다.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무자비한
독재정권 (ruthless dictatorship)’이 25년 이상 모든 약속을 저버리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왔는데, 이러한 무기들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시진핑의 2017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보고서

시진핑 중국주석이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대회는 5년에 한 번 열리는데, 지난 5년간의 대내외정책 성과를
평가하며 앞으로 5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핵심 지도부를 선출한다. 여기서 시진핑은
68쪽의 보고서를 세 시간 넘게 읽었다.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통해
2050년까지 세계 제1의 국가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신시대’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미국식 자본주의에 승리하는 시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소강 (小康)
사회’를 거쳐 모든 인민이 함께 부강해지는 ‘대동 (大同) 사회’로 나아가는
시대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중간 목표를 이루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최종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신시대’라는 말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되자 아버지 부쉬
미국대통령이 외쳤던 ‘신세계질서 (New World Order)’를 떠올리게 한다. 소련과
대결했던 냉전시대를 구세계로 규정하면서 미국이 냉전에서 이기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세상을 신세계로 부른 것이었다. 미국이 자본주의를 앞세워 소련
사회주의를 이기고 신세계를 주도해왔다면,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내세워
미국식 자본주의에 승리하는 신시대를 열겠다는 의미랄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사회주의다. 덩샤오핑이
자본주의에도 계획경제가 있을 수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경제가 있을 수 있다며
창출했던 체제다. 중국이 1978년부터 개혁 개방을 실시하며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했던 것이다. 나아가 2010년대 초까지 30-40년간 지속적으로 1년
평균 10% 안팎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2009년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
수출대국이 되었으며, 2012년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 무역대국이 되었다.
2014년엔 구매력 국내총생산 (GDP)으로 미국을 뛰어 넘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에
올랐다. 중국이 늦어도 2015년부터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국제규범의 제정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밝힐 수 있었던 배경이다. 미국이 2017년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국가 주도의 경제 모델을 확산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경계해야겠다고 명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시진핑이 강한 군대 건설을 유달리 강조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2020년까지
군대의 기계화와 정보화를 실현하고 2035년까지 국방 현대화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2050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야심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 (一帶一路)’ 정책을 바탕으로 ‘중국의 꿈 (中國夢)’과 아울러
‘강한 군대의 꿈 (强軍夢)’도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급속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도 크게 증강시켜 왔다.
국방비를 1990년대부터 크게 늘렸다. 2000년대부터는 경제 성장률을 웃도는 연
평균 12%의 국방비 증가율을 보였다. 세계 군비 지출 7대국 가운데 중국의 군비
지출이 1990년대 말까지는 맨 꼴찌였지만, 2005년부터는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10년부터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군사 강국들보다 두 배 이상의 군비를
지출해왔다. 트럼프가 2017년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앞으로 미국 국방비를 크게
늘리겠다고 밝힌 배경일 것이다.

 그래도 중국의 국방비는 아직 미국 국방비의 1/5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겪으며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예산 통제법
(Budget Control Act)’을 만들어 2011년부터 국방비를 매년 자동적으로 10% 정도
줄여왔다. 오바마 행정부 때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아시아로의 회귀
(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 (Asia rebalancing)’ 정책을 펴면서도
국방비를 줄였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뒤집고 2018년 국방비를 오히려
10% 이상 늘린 터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2020년까지 해군함정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증강 배치하겠다고 했었다. 현재 배치되어 있는 6척의
항공모함을 유지하면서 상당수의 군함을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계획을 강화할지라도 약화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중국은 이에 맞서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았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anti-access and area-denial)’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추적하여
격침시킬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중거리 지대함 (地對艦) 다탄두 (多彈頭)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2009년 공개했다. ‘항공모함 킬러’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014년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MD)을 뚫을 수 있는 마하 10 (시속
약 12,000km)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했다. 미국이 남한에 싸드를 배치하며
이 지역에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하려는 배경 아니겠는가.

 
3.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

김정은 조선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 신년사를 발표했다. 대략 10쪽
안팎의 분량으로 2017년 이룩한 성과를 평가하며 2018년 계획을 보고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이 극도에 달해
유례없는 엄혹한 도전에 부닥쳤는데, 최악의 난관 속에서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력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무력 완성’ 및 대미 정책과 관련해 될수록 그의 말을 인용해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
되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 미국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 이 위대한 승리는 당의 병진로선과 과학중시사상의 정당성에 따른
역사적 장거이다.” 병진로선을 걷고 과학을 중시해 수소폭탄과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병진로선 (竝進路線)’이란 군사건설과 경제건설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2013년부터 채택되었다. 김정일 시대엔 나라 안팎의 위기에 직면해
‘선군 (先軍) 정치’를 내세워 군사력 강화에 집중했는데, 김정은 시대엔 경제
개발에도 힘쓰겠다는 취지다. 2017년 10월 열린 조선로동당 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철저하게 관철할 것을 다시 확인했다.

신년사에서도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야 하겠다”며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철저한 관철을 다짐한 데 이어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핵무기와
미사일의 대량 생산 및 실전 배치를 강조한 것은 앞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추종해 정세를 험악하게 몰아가며 남북
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다고 비난했다. 남북문제를 외세에 부탁하면 얻을
게 없고 오히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그들에게 간섭할 구실을 주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
격화를 부추기지 말고, “이 땅에 화염을 피우며 신성한 강토를 피로 물들일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두어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했다.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전략자산’으로 불리는 미국의 첨단무력을 남한에 배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북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대책을 세워나가자고 했다. 미국이 아무리 핵을 휘둘러도 북한에 강력한 전쟁
억제력이 있는 한 어쩌지 못할 것이니 남북이 합심해 전쟁을 막고 긴장을
완화시키자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폭넓게 실현하자며,
남한의 여당이든 야당이든 단체든 개인이든 누구에게나 접촉과 왕래의 길을
열어놓겠다고 했다.

김정은은 2018년이 남북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9월에
정부수립 70주년을 맞고, 남한은 2월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바란다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1월 9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나아가
평창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 그리고 대표단을 보내며 특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다.
 
4. 미국-중국-북한 사이에서 남한의 선택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7월 미국과 독일을 방문하면서 포괄적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및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을 비롯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면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선거 유세와
공약집을 통해 취임 전부터 밝혔던 내용이다. 2017년 5월 취임사와 2018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때문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 남한은 유일한 군사동맹 미국에 안보문제를
전적으로 의존하며, 최대의 무역상대 중국에 경제문제를 지나치게 의존한다. 이 두
강대국이 앞으로 적어도 30년 동안 치열한 패권경쟁을 벌이며 갈등과 분쟁에
휘말리기 쉬운데 남한은 어떻게 자주를 지키며 중립이나 균형을 꾀할 수 있을까?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 속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북핵문제를 풀지 않고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곤란하다. 특히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남북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엔 적이 되는 국제관계 속에서,
언젠가 헤어질지 모를 외세 미국과 앞으로 꼭 더불어 살아야 할 동족 북한
사이에서 어떻게 평화를 추구하고 통일을 지향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여기저기서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무수하게 제시해왔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제1단계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전쟁 위협을 그만두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춘다.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거나 주장하는 이른바 ‘쌍중단’이다. 미국이
거부하는 게 문제다. 남한이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거나 중단하자고 하면 미국은
단독으로라도 훈련하겠다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며 위협하기도 할 것이다.
남한이 결연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냉전종식 이후 주한미군은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있는 터에, 쉽게
철수할 수 있겠는가. 남한이 나가라고 해도 미국은 나가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고
협상하면 될 것이다.
 
제2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꺼려하고, 북한은 주한미군이 유지되는 한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3단계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을 비슷하게 감축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다. 나아가 남한이 제안한
국가연합이나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낮은 단계로 통일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남북 사이에 교류와
협력만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에 휩쓸릴 이유도 없고,
안보의 수단 가운데 하나인 한미동맹을 국가 목표처럼 떠받칠 필요도 없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만나기 시작하는 남북이 진정으로 손을 맞잡으면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고, 정상이 만나며,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고, 금강산관광이 다시 시작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씨알의 소리≫ 2018년 1-2월호 권두언으로 실은 글을 조금 고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