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149
글쓴날 : 2013-01-05 11:39:58
글쓴이 : 사월혁명회 조회 : 329
첨부파일 : 남정현-편지한통.hwp (111616 Bytes)
제목: <자료 12> 소설 "편지 한 통" (남정현) 전문

소설

                           편지 한 통


                                                       남  정  현


  미제국주의전상서.
  나는 편의상 미제국주의라고 하는 당신의 그 빛나는 존함 대신에 당신을 그냥
당신이라고만 부르려 합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내 이름의
명성에 걸맞게 예의를 갖추자면 나는 응당 당신을 폐하나 전하가 아니면 최소한
그래도 각하 정도로는 호칭해 줘야만 예의에 맞는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 당신과 나 사이에서 무르익은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지밀한
관계로 미루어 보아서 말입니다. 설마하니 내가 원 눈곱만치나마 당신의 그 드높은
위상에 누를 끼칠 그런 무슨 불손한 생각을 가지고 미 제국주의 당신을, 그냥
당신이라 부를 리야 있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다만 오늘따라 유난히
치밀어 오르는 이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한시바삐 당신께 아뢰고 또 당신의 진심을
한번 들어봐야만 살 것 같다는 이 단 한 가지 절박한 일념에만 치우치어 그저
별생각 없이 평시에 내가 자주 쓰던 인대명사인 이 당신이란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냥 가감 없이 말씀드릴 뿐입니다.
  자, 보십시오.
  당신.
  이 얼마나 정겹고 부르기 쉬운 부드러운 호칭인가를 말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이란 이름의 간편한 인칭대명사가 폐하니 전하니 또 무엇이니 하는 그런
유의 으시시한 존칭보다 격이 좀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니 격이 좀
떨어진다니요, 원 천만의 말씀을. 당신도 아시다시피 말이란 원래가 그 어느 나라
말이든 똑같은 말을 가지고도 아, 해서 다르고 어, 해서 다르다고들 하지
않던가요. 당신의 지극한 배려에 의해 장장 반세기 이상이나 제가 지배하고 있는
이 나라의 용어인 이 ‘당신’이란 낱말 역시 그렇답니다. 아, 해서 다르고 어,
해서 다르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상대방을 바로 코앞에 앉혀놓고 눈치도 없이
이인칭으로 직접 이봐 당신, 하고 지칭하게 되면 뭔가 불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홀대하는 꼴이 되지만, 그러나 아버님 당신께서라거나 또는 하느님 당신께서라거나
하고, 이렇게 ‘당신’을 한 칸 띄어 점잖게 삼인칭으로 호칭하게 되면 이
‘당신’이란 이름의 인칭대명사는 느닷없이 그 격이 가파르게 상승하여 어느새
그것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나 혹은 나를 낳아주신 나의 어버이를 일컫는
그런 최존칭어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미제국주의 당신을 내가 지금
이렇게 떳떳한 마음으로 감히 당신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당신을 이미
하느님이나, 그에 준하는 그런 어떤 지존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
  아, 미제국주의 당신. 당신이야말로 나에게 있어선 그 누가 뭐라든 나의
구세주이시며 동시에 나의 영원한 어버이이십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분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분이라, 이 말씀입니다. 정말입니다. 도대체 당신이
어떤 분이시던가요. 그러니까 그게 아마 1945년의 어느 날이었죠. 지구전체를
단숨에 삼킬 수도 있다는 그 으시시한 핵무기, 당신이 만든 그 핵무기를, 그것도
단 두발만을 가지고 일본천지가 다 불바다 속에 잠기나 싶게 불지옥을 만들었던
당신, 그때 바로 눈앞에서 천리만리나 치솟는가 싶던 그 광란의 불기둥 밑에서
속절없이 한줌의 재로 변해가던 나를 얼른 구해준 당사자가 바로 당신이
아니셨던가요.
  기적.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내 생각엔 예수님의 부활에 버금가는
그런 불가사의한 기적으로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당신은 틀림없는 나의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선
한줌의 진흙을 가지고 사람을 빚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만 당신은
한줌의 진흙보다 다루기가 훨씬 더 불리한 한줌의 재를 가지고 여봐란 듯이 나 즉
일국의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의 한 거창한 생명체를 탄생시키셨습니다. 이건 정말
언제나 지구의 중심에 서서 오대양 육대주를 자신의 식성에 맞게 떡 주무르듯
하시려는 미제국주의 당신의 그 음험한 괴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종의 창세기적인 그런 어떤 꿈같은 위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편의상 대한민국의 제헌국회라고 하는 그 지저분한 자궁을 통하여 1948년의 어느
날에 나를 탄생시켰다고 하셨습니다만 나는 사실 누구의 자궁을 통하여 언제 이
세상에 출현했던 간에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난 그
배경엔 어떠한 형태로든 당신의 괴력이 작용한 흔적이 역력한지라 당신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손상될 염려는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전생에서
환생하여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이 빛나는 금생에서 거연히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그만 얼마나 좋았던지 당신의 존재를 잠시나마 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나 자신밖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더군요.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도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컨대 뭣하고도 견줄 수 없는 그런 어떤 유일무이한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일거라는 느낌마저 들더라니깐요. 왜냐하면 내가 전생에서
그 얼마나 몸을 사리지 않고 선업을 쌓아가는 데만 전념했으면 전생에서의 그
영광스럽던 삶의 모습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이렇게 금생으로까지 고스란히 다
이어질 수가 있었겠느냐 하는 그런 팽배한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내가 살아온 전생은 연기(緣起)요, 윤회요, 색이요, 공이요, 무요,
업이요, 이타요, 하는 등의 불가의 가르침이 촉촉이 젖어있는 곳이 아니었던가요.
그중에서도 나는 인과응보라는 불심의 섭리에 마음이 더 끌리더군요. 말하자면
전생에 쌓은 선악의 업인에 의해 금생의 삶의 형태와 그 질이 결정된다는 가르침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생에서 선업을 쌓으면 금생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게 마련이고 그와 반대로 악업을 쌓으면 틀림없이 그에 준하는 응징이
뒤따른다는 말씀 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 불심을 믿습니다. 사실은
나도 아직 해탈의 경지엔 이르지 못한지라 남들처럼 삼계육도의 그 험한 길을 돌고
돌며 윤회전생(輪回轉生)의 고단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인즉 내 어찌
인과응보의 그 냉엄한 불법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믿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괴력에 의해 금생에서 눈을 번쩍 뜨던 순간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역시 전생에서의 내 보람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내생(來生)에서의 내 화려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오로지 이타의 정신으로 일구월심 공덕을 쌓아가던 내 발자욱
하나하나가 뭔가 불멸의 흔적처럼 그렇게도 빛나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내 주변의 많은 자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전생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들 하거든요. 특히 그 불자라는 자들까지도 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잖아요. 짐작컨대 그것은 아마 그들이 전생에서 쌓아놓은 공덕이 너무나
미미하여 좀 창피해서 그랬거나 아니면 무슨 흉물스런 벌레와 같은 것으로
환생했다가 천덕스럽게 생을 마감했던 탓으로 그들 스스로가 아예 전생에 대한
기억을 철저히 지워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 어떻게
자기가 살을 비비며 살이 온 전생에서의 그 생생한 행적을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악업이든 선업이든 전생에서의 자기 행적은 누가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누가 허문다고 해서 허물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뜻에서 내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금생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려는 순간 나의 전생에 대한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 대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이란 이름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전생의
내 생애야말로 누가 봐도 그 걸음걸음마다가 다 빛나는 나의 업적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나와 견줄 자가 있었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하늘도 땅도 내 앞에서는 다
머리를 숙여야할 정도로 나의 위세는 그야말로 위풍당당 그 자체였습니다.
천황폐하의 총애를 받으며 수시로 천황을 알현할 수 있는 사이였으니 왜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의 일본천황이 그게 어디 인간이었나요.
땅을 딛고 세상을 살면서도 유일하게 하늘에다 적을 둔 것 같은 신성불가침의
존재, 그는 역시 신이었습니다. 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처참했던 대동아전쟁
‘세계이차대전’의 핵심적인 주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전 후 나는 신이
아니고 인간이다, 라고 소리친 소위 그 인간선언이라는 것 한마디로 그 엄청난
죄과에서 슬쩍 벗어나지 않았던가요. 그가 신이 아니었더라면 아 어떻게 이천여만
명의 아시아인과 삼백여만 명의 자국인 그리고 육만여만 명에 이르는 연합군을
죽음에 몰아넣고도 자신은 멀쩡하게 면죄부를 받고 그까짓 부하 대여섯 놈만을
응징하는 것으로서 그 큰 죄과에다 종지부를 찍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물론 그것은
멀리 아시아 전체의 미래를 내다본 미제국주의 당신의 속셈이 작용한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내가 치안유지법이란 이름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일본천황은
분명히 신의 위치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백성들은 너나없이 모다들
천황의 그 천안(天顔)을 한번 우러러보고 그 천성(天聲)을 한번 들어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던 시절이라 천황의 황거(皇居)가 위치한 궁성을 수시로 드나들던
나의 위세는 정말 남 보기에 하늘을 찌를 듯싶었을 겁니다.
  참 생각지도 않게 지금 황거가 자리 잡은 궁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이지 그
궁성의 면적이 좀 넓던가요. 아니 넓다느니 보다는 아주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하여튼 내가 지금 그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 대한민국의 옛 궁들인
그 창경궁이니 창덕궁이니 경복궁이니 하는 궁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넓으며 또한
당신의 본거지인 백악관이나 펜타곤의 면적을 합친 것보다도 넓다면 아마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듯싶습니다. 그처럼 넓고도 넓은 궁성의 요소요소엔 사시사철
각종의 희귀한 꽃과 나무와 새들이 제가끔 진귀한 몸매를 뽐내고 있었으며 또한
그것들은 언제나 서로 경연하듯 감미로운 향기를 주변에 자욱이 내 뿜고
있었거든요. 아 아름답고 경이로운, 그곳이 바로 신들이 소요하는 선경이지 어디가
선경이겠습니까. 내가 처음으로 일본천황을 알현한 곳도 바로 그 선경이었습니다.
그때 천황께선 나를 대하자마자 너무나 흡족하여 호흡이 고르지 않아선지 그냥
한참이나 지긋이 나를 바라만 보시더니 순간,
  죽일 놈은 가차 없이 죽이고
  살릴 놈도 가차 없이 살려라
  딱 이 두 마디 말씀을 하시고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시던 것입니다. 아 그
자애로운 미소, 하지만 나는 당시 처음 듣는 천황의 그 천음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여 정말 경황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가. 죽일 놈은 가차 없이
죽이라는 이 한마디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의 체질에 딱 맞는 말씀이라 얼른
알아들었지만 그러나 살릴 놈도 가차 없이 살리라는 이 한마디는 여간 난해한
대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천황께선 나의 그런 난감한 심정을
헤아리셨던지 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가득 담긴 부드러운 어조로, 짐이 네게
이르노니 살릴 놈들에겐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주란 말이다. 뭐든 아끼지 말고
말이다. 놈들이 너무 좋아서 밤낮없이 천황만세를 부르며 너울너울 춤을 출 수
있게 말이다. 다 주란 말이여, 알았지? 그리고 천황께선 자신이 분명히 신이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해 보이듯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몇몇의 아아한 선녀들에
떠받들려 그만 바람처럼 스르르 눈앞에서 살아지던 것입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만백성이 우러르는 천황의 실체를 지근지지에서 직접 목격했다는 이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도무지 가슴이 벅차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며칠이나
계속되었거든요. 그 후 나는 대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정말 멸사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답니다. 나에 대한 천황의 어명대로 죽일 놈은
가차 없이 다 죽이고 살릴 놈도 가차 없이 다 살렸다 이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대동아공영권을 이룬다는 위대한 꿈을 안고 밤낮없이 헌신하고 있는 대일본제국의
그 신성한 국체를, 그 국책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려는 자는 물론 혹여 속으로나마
티끌만치라도 그렇듯 흉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들은 그것이 개인이든 단체든
가리지 않고 낱낱이 다 잡아내어 가차 없이 천벌을 내렸다 이 말입니다. 그것들이
다시는 이 세상에 낯짝을 내밀지 못하도록 아주 숨통을 꽉 막아놓았다 이
말씀이거든요. 특히 조선 놈들에겐 더욱 무자비하게 대했습니다. 시대에 뒤진
학정에 못 이겨 다 죽어가는 놈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득이 일한합방을 선포하고
그에 맞게 내선일체를 이루어가는 일본천황의 그 은정어린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건방지게 망국이니, 독립이니, 민족이니, 자주니 하면서 겁도 없이 대드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제 놈들에게도 무슨 제 놈들 특유의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고
역사가 있다면서 뒤에서 수군거리는 자들마저 수소문하여 다 잡아다가는 그냥
철퇴를 내렸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취급을 안했습니다. 그냥 개돼지 때려잡듯
했거든요. 아 조선 놈들이 오죽 다급했으면 제 놈들이 그렇게도 신주 떠받들듯
하던 제 놈들의 성과 이름마저 호적에서 톡톡 털어내고는 일본인의 성과 이름으로
갈아버렸겠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혈통을 중시하던 놈들의 욕설 중에 가장
패륜적인 욕지거리가 ‘성을 갈 놈’이었는데 놈들은 스스로가 다 성을 갈아버린
놈이 되어버렸으니 당시 나에 대한 놈들의 공포증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는 아마
이것만으로도 짐작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천황폐하의 말씀대로 죽일 놈들을
가차 없이 죽인 내가 살릴 놈들 또한 가차 없이 살렸을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일한합방을 조선을 위한 축복으로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자, 황국신민이
된 기쁨을 영 참지 못하여 늘 춤추듯 만세를 부르는 자, 철저하게 나를 따르며
나의 지시에 솔선수범하는 자, 이러한 자들에겐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가차 없이
다 주었다 이 말씀입니다. 뭉텅뭉텅 돈도 주고 땅도 주고 공장도 주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등 그 좋다는 온갖 명예로운
작위도, 옜다 다 처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흡사 소나기 퍼붓듯 했습니다. 그러니
놈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아주 홀딱 뒤집히더군요. 너무도 기뻐서
말입니다.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이었겠지요. 조선의 여기저기에선 연일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천황을 향한 경배의 행렬이 길게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선일체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인 엄연한 실체로서 굳어지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이제 일본과 조선은 둘이 아니고 분명히 하나라는 사실이 세계
앞에 당당히 부각되는 형국이었습니다.
  황홀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역사적인 대변화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천황의 어명을 충실히
받든 치안유지법인 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도무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며칠이나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천황폐하께서 이 세기적인 나의 위업을 보시고 뭔가 그에 걸맞은
엄청난 포상이 곧 내게 내려질 것이란 생각에 나는 도무지 매일매일이 들뜬 상태라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그렇습니다. 바로 그 어느 날에 돌연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천길 지옥에서 솟구치는가 싶던 그 시뻘건 불덩어리에 휩싸여
부득불 전생에서의 내 생이 종말을 고하지 않았던가요. 쓸쓸하게도 한줌의 재만
남기고 말입니다.

  되돌아보면 내가 전생에 남긴 그 희미한 한줌의 재마저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미제국주의 당신이라 하더라도 아 어떻게 뭣을 근거로 해서 나 즉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이 귀기가 흐르는 한 거대한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전생에 남긴 그 한줌의 재야말로 나를
존재케 한 그 근원적인 씨앗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던
것입니다, 당신도 아마 그러셨으리라 믿습니다. 일본천황의 그 화려한 구상을
받들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골쇄신한 전생에서의 내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한줌의 재를 발견하시고 당신도 꽤나 가슴이 두근거렸으리라 믿는다 이
말씀입니다. 너무도 기쁘셔서 말입니다. 당시 당면한 당신의 주변정세가 결코
녹록치 않아 고심하고 있던 차에 전생에서의 내 활약상이 배어 있는 그 흔적을
발견하셨으니 얼마나 반가우셨겠습니까. 이를테면 당신의 적극적인 관여로 갓
태어난 대한민국, 그때 그 대한민국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오죽 대단했었나요.
경술국치 이후 수수도 없는 백성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모다들 벌떡 일어나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그들은 국내외의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수많은 세월 일제와 그에 추종하는 매국노들을 상대로 그야말로 온몸을 바쳐
투쟁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존경하는 링컨이란 대통령이 이미 백 수십 년 전에
게티즈버그에서 말했다는 소위 그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를 이
삼천리 근역에 거연히 솟아오르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망하고
나라가 해방 되었는데도 또다시 외세에 의해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그 분단된
남쪽에 그것도 친일매국 세력이 주류가 되어 단독정부가 세워진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청천벽력이었겠지요. 그들의 눈에 분명히
그것은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가 아니라 외세를 위한 외세의 정부로 비쳤을
겁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밤낮없이,
  삼팔선이 웬 말이냐
  남북분단이 웬 말이냐
  단독정부가 웬 말이냐
  외세 물러가라
  매국세력 청산하고 
  통일정부 수립하자
  하고,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정말
풍전등화 격이 아니었나요. 그때 당신의 심려가 얼마나 깊으셨습니까. 하마터면
미래에 대한 당신의 웅대한 포부가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었으니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이차대전시의 당신의 고귀한 전취물로 생각하는 이
사우스 코리아를 요지부동의 튼튼한 진지로 만들어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 전역을 허물어 버리고 내친김에 아주 당신의 백년숙원이었던
아세아권 전체를 수중에 넣음으로서 연년세세 지구의 주인행세를 하려던 당신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위기의 시절이었다 이 말씀입니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당신 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마침 그 시절에 전생에서의 나의
희미한 흔적을 미끼로 전무후무한 괴력을 지닌 나 즉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한
신비한 생명체를 탄생시키셨으니 말입니다. 그때 아마 하늘도 땅도 아니
산천초목까지 모다 일어서서 당신에 대해 큰 박수를 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선가
내가 국보법이란 이름을 가지고 처음으로 당신을 대하던 순간 당신의 표정은
그야말로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나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기대가 너무나 벅차서
말씀이 잘 안 나오던가 당신은 흡사 뭔가 귀한 보물을 쓰다듬듯 그렇게 나의
머리를 한참이나 쓰다듬어 주시더니 아주 느긋한 미소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로,
너와 나는 같은 운명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란 말이야. 이 세상 끝까지
같이 가자꾸나. 알았지? 그러시고는 내 손목을 꼭 잡아주시지 않았던가요. 아 그
따스함. 금생에서의 나의 영화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겠다는 그런 굳은 의지와
결의가 가득 담겨있는 듯한 당신의 말씀 앞에서 나는 그만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말입니다. 당시 나는 나 스스로를 향해서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당신이 시키는 일이라면, 그 무슨 일도 망설이지 않고 삽시간에
해치우겠다는 그런 굳은 맹세를 했답니다. 설사 그 일이 너무나 난감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날까지도
일본천황과 은밀한 교감이 있으셨던가, 나에 대한 당신의 간곡한 당부라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내 전생에서의 나에 대한 일황의 당부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원 이럴 수가. 당신의 나에 대한 첫
당부도 역시 죽일 놈은 가차 없이 죽이고 살릴 놈도 가차 없이 살려라, 바로
이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순간 나는 왠지 좀 어이없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에는
뭔가 전생과는 다른 무겁고 힘든 일거리로 당신께 결사보은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거리가 너무 쉽고 손에 너무 익은 것이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굽니까. 당신의 그 빛나는 구상을 실현시킬 중책을 맡기시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셨을 리가 있었겠나요. 당신은 아마 전 세계를 품에 안기위한
그 요충지로서의 사우스 코리아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전생에서의 나의
공적으로 미루어보아 그 방면에선 거의 국보급인 나라는 존재가 꼭 필요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저런 생각에 이르자 당시 나는 그저 무조건 당신의 뜻에 따르기로
작정하지 않았었나요. 죽자 사자 당신의 뜻에 따라 금생에서 선업을 쌓아가다 보면
인과응보의 불심에 의해 앞으로 다가올 내생에서의 내 영화 또한 떼 놓은 당상이라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라는 나의 속셈이 조금 작용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즉시 팔을 걷어붙이지 않았던가요. 두 눈에 시뻘건 불을
켜고 말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죽일 놈과 살릴 놈을 가차 없이 가려낼
심산이었습니다. 일단 이렇게 마음을 굳히고 나니 내 눈 앞엔 별로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진실로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당신 말고는 말입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알았지? 하고 내 손목을 꼭 잡아주시던 당신의 결심이 끝까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안고 나는 사실 그동안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신의 앞길에 장애가 되는 온갖 잡귀들을 다
쓸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당신을 지칭하여 한반도의 남쪽을 강점한 흉악한
강도라고 강변하면서 흡사 철천지원수처럼 당신을 적대시하는 북쪽의 빨갱이
집단은 물론 그저 건뜻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자주다 민주다 통일이다 하면서
당신께 주먹질을 하는 남쪽의 그 수많은 불량배들을 응징하기 위해 나는 사실 잠
한번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러한 내 마음가짐의
덕분이랄까요. 생각하면 내가 국보법이란 이름으로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해 첫해만 해도 나의 활약이 얼마나 눈부셨습니까. 물론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무려 십수만 명에 이르는 죽일 놈들을 가려내어
그것들을 즉시 죽음의 관문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요. 어디 그뿐만이었겠습니까.
국보법인 나의 뜻에 반하는 갖가지 형태의 무슨 정당이니 무슨 단체니 하는 그런
흉측한 걸림돌들을 일거에 백 수십여 개나 아주 박살을 내지 않았습니까. 그것들이
다 무엇이었던가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들은 다 당신이 망하기를 바라는 큰
재앙 덩어리였습니다.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 의 화신인 당신을 보고 어이없게도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원수라면서 어떻게든 그저 당신의 보물인 이
사우스 코리아를 당신의 품에서 빼내기 위해 앙탈을 부리는 아주 막된
놈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아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뒀더라면 지금 당신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당신은 아시아로 뻗어나갈 귀중한 발판을 잃고 지구의 중심축에서 멀리
벗어나 지금쯤은 아마 지난날의 영화나 반추하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단 하루나마 마음 놓고 잠을 잘 수가 있었겠습니까. 
  특히 6·25, 4·19, 5·16, 5·18 등등의 준엄한 역사의 격한 격랑에 부딪치면서
나는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아세아의 어떤 정치인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이 아름다운 사우스 코리아를 전혀 누가 범할 수 없는 당신의 영원한 불침항모가
되게 하기 위해 나는 사실 거의 몸부림치듯 하는 심정으로 당신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죽일 놈은 가차 없이 죽이고, 살릴 놈도 가차 없이 살렸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죽일 놈들의 수가 내 마음처럼 그렇게 쉽게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놈들의 생명력과 번식력이 어찌나 강한지
놈들을 당할 자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어느 동물학자의 말에 의하면 쥐란
놈 한 쌍이 일 년 동안 번식시킬 수 있는 후손들의 수가 무려 일만 오천여 마리에
이른다는데 그 죽일 놈들의 번식력은 그보다도 더한 것 같아서 그만 입이 딱
벌어질 때도 있답니다. 이쪽에서 죽일 놈들의 숨통을 꽉꽉 틀어막으면 어느새 또
저쪽에서 죽일 놈들이 날 조롱하듯 킬킬대며 주먹질을 하는 판이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여튼 동쪽을 제압하면 금방 서쪽에서 꿈틀거리고 또 서쪽을
짓눌러버리면 남쪽에서 들썩거리곤 하니 설령 내 몸이 쇳덩이라 한들 어찌 기력이
쇠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만사를 다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당신은 그때마다 적절하게 나의 체력을 보강시키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다해주셨습니다. 내가 태어난 이후 수십 년간에 걸쳐 벌써 십여 회 이상이나
당신은 여러 기관을 동원하여 나의 오장육부를 전보다 몇 배나 더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나는 명실공히 이 나라에선 법 중 법이요 왕 중 왕의
지위에 올랐다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내가 사실 이 땅에서 못할 일이 뭣이
있겠습니까. 그래 그런가 세인들은 나를 보고 저자는 남자를 여자로 또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일 말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고 다들 혀를 내두른답니다. 그만큼
나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내가 잘나서였다기보다는 정말
잘난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내가 충실히 시중들어 드린 결과라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내가 당신의 뜻대로 죽일 놈들을 가차 없이
죽인 것만큼 살릴 놈들도 가차 없이 살려놓은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말이거든요. 사실 말이지 나는 살릴 놈들에 대해선 그들이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할 만치 했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불안해서 단 하루도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자들. 
  당신과 나를 끝까지 믿고 생사고락을 같이하겠다는 자들.
  멸공만이 살길이라는 자들.
  세계화 시대에 민족이니 뭣이니 하는 놈들에겐 철추를 내리라고 절규하는 자들.
  나는 정말 이들에겐 아무것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줄 것은 다 줬습니다. 내
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돈도 주고 땅도 주었습니다. 권력도 주고 명예도
주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당신과 진정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는 특등 국민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부분의 핵심
요직에 포진하여 하루도 쉬임없이 만세만세 만만세 하고 당신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 당신의
귀중한 보물인 이 사우스 코리아는 여러 면에서 당신과 거의 일체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한 나라의 중요한 요체인 경제와 군사 부문은 단 얼마간도 당신의
배려가 없으면 혼자 서 있기가 어려운 형편이며, 사실은 다른 부문도 홀로 서기가
어렵기는 서로가 도토리 키 재기라 그런 문제를 가지고 그 경중을 가린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하여간 이러한 현실의 모든 긍정적인
현상은 나를 철저하게 지지하는 각계각층의 특등 국민들이 당신을 위해 이루어놓은
빛나는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단 한 가지 아직도 미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땅의 백성들이 평상시에 사용하는 언어문젠데, 그것도 내 판단엔 머지않은
장래에 곧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좀 쉽게 말하면 내가 관할하는 이 나라의 언어는
은연중에 영어로 대치되어 영어가 무리 없이 공용화될 날도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이 말씀이거든요. 정말입니다. 바야흐로 이 땅의 남녀노소는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지금 대부분이 다 저도 모르게 영어 열풍에 휘말리어 허우적거리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영어만이 살길이다, 라는 지엄한 슬로건 하에 모다들 나
살려라, 하는 심정으로 영어, 영어, 하면서 영어에 매달리느라 너나없이 경황이
없잖습니까. 그저 내 자식의 영어학습을 위해선 비장한 각오로 땅도 팔고 집도
팔고 몸도 팔겠다는 학부형들이 줄을 서고 있으며 심지언 유창한 영어 발음을 위해
혓바닥에마저 칼을 대고 성형하겠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선 한 인간이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한
인간의 생애 전반에 걸친 빈부귀천을 규정하는 가장 현실적인 잣대가 되어주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 그런가 내 주변에선 벌써부터 영어로 소통하고 영어로
강의한다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으며, 영어로 토의하고 영어로 회의하는 회사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인이 선망하는 일류 대학이 되고 일류 회사가
되자면 이 길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한 탓이겠지요. 이러한 모든 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신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나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활자와 전파 등
갖가지 전달매체를 다 동원하여 이 길만이 살길이라고 그 타당성을 주장하느라
수많은 세월 땀을 흘린 귀중한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봐도 이건 참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자화자찬 같아서 좀 뭐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내가
일편단심 당신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군사와 경제 등 각 부문에 뒤이어
언어마저 당신과 일체감을 이룬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내가 전생에서 이룬
내선일체에 못지않은 세기적인 대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경사스런 방향으로
사회가 눈부시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와 당신을 떠받드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사들은 이제야 겨우 빨갱이 놈들에 대한 걱정이 없이 다리를 쭉 뻗고 살맛나는
세상을 실컷 맛보게 될 모양이라면서 사뭇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싶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호시탐탐 남침만을 노리고 있는 북쪽의 빨갱이 무리들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자신들이 맘껏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먼저 당신과 내가
모든 부문에서 통합된 체제를 갖추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빨갱이 그것들이 감히 어디를 넘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친김에 아주 내일이라도 당장 유에스에이와 사우스 코리아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선포하게 되면 그 즉시로 북쪽 빨갱이 집단의 수명은
끝이라는 것입니다. 빨갱이 그것들은 그 즉시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그야말로
망연자실 멍하니 지붕만 바라보다 결국엔 다 굶어 죽고 말 테니 말입니다. 세상에
아 이것처럼 빠르고 정확한 멸공정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맞는 얘깁니다. 나는
당신의 뜻을 받들어 나를 지지하는 이 참다운 백성들의 간절한 소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도록 그동안 육십여 성상을 정말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심을 다 했습니다.
한 생명체로서의 맡은 바 임무를 거의 다 이루어 놓지 않았느냐 이 말씀이거든요.
그리하여 나는 요즘에 와선 좀 느긋한 태도로 꼭 진인사대천명 하는 심정이랄까,
하여튼 할 일을 다 했으니 조만간에 나에게 뭔가 좋고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참이었는데 그런데 이게 뭐죠?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이 말씀입니다. 세상에 당신이 원 내게 이럴 수가 있으신가요. 그저
기회만 있으면 당신의 앞길을 가로 막으려고 생발광을 떠는 북쪽의 빨갱이 집단을,
당신의 그 결정적인 역사의 장애물을 이제 완전히 제거했으니 기뻐해 달라는 그런
감동적인 소식은 전해주지 못할망정, 아니 이게 무슨 망측한 소리죠? 당신이
빨갱이 그것들과 무슨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한다니 말입니다. 처음엔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설마 해서가 아니라 이건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정신상태에 갑자기 무슨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면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망언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당신에게 지금 뭣이 부족해서
우리들의 철천지원수인 북쪽의 그 빨갱이 집단과 어이없게도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거죠? 아니 당신에게 지금 없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있을 것은 다 있잖습니까.
그것도 넘치게 있습니다. 원자탄이 없습니까. 수소탄이 없습니까. 전자탄 광선탄
세균탄도 무진장 있잖습니까. 그중 그 어느 한 가지 탄만 가지고도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몇 번이나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지금 세인들의
중론입니다. 그런데도 뭣이 아쉬워서 빨갱이 그것들과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거죠? 그것들 그저 단 한방이면 그만일 텐데 말입니다. 나는 사실 수수년
전 당치않게도 당신이 북쪽의 빨갱이 집단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무슨 회담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순간 당황한 목소리로 뭐라구? 그러면서
벌떡 일어났다가는 금방 흥, 그럴 리가, 하며 이내 평상심으로 돌아와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의 지지자들은 모다들 갑자기 무슨 큰 변고라도
당한 것처럼 이건 분명히 우리에 대한 배신이며 변심이며 치욕이라면서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래도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냥 웃기만 했거든요. 당신이 누군데
하는, 당신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작용한 탓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진심을
가지고 북쪽의 그것들과 만인좌시리에 일대일의 구도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면,
그런 자리에 앉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당신의 패배를
의미하는 일종의 굴욕적인 신호로 비쳐졌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에스에이와 노우스 코리아는 비교가 안 되는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비교를 한다면 당신의 실력으로 보아 꼭 고양이와
쥐와의 차이를 연상할 수 있는데,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비교라는 말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나는 당신이 북쪽의 그것들과 한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사실은 그것들과 뭘 상의해 보자는 의도가 아니라 흡사 고양이가 쥐라는 먹잇감을
앞에 놓고 그걸 그냥 한 입에 먹어 치우기가 아까워서 잠시 이리저리 쥐란 놈을 좀
희롱해보는 그저 그런 유의 만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과 나의 철천지원수인 그 빨갱이 집단을, 그 집단의 무슨 대표라는 것들을
아주 눈 가까이에 앉혀놓고 그것들을 그저 소문 없이 일거에 꽝하고 해치울 수
있는 그런 결정적인 급소를, 그렇습니다. 놈들의 마지막 숨통을 조일 수 있는 그
결정적인 급소를 찾아내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늘
여유만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말씀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 후 소위 그 회담이란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 아니 일 년 이 년
하면서 질질 끌더니 어느새 십여 년이란 세월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잖은가요.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회담의 횟수가 늘어나면서부터 당신의 태도가 점점
수상해지더라 이 말씀입니다. 왠지 평상시처럼 세계의 주인답게 당당해 보이질
않고 늘 뭔가에 쫓기는 표정이더군요. 흡사 무슨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당신의 안면엔 늘 불안하고 초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북쪽의
빨갱이 그것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혹시나 그것들의 실체가 결코 만만치만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감지하기라도 했는가, 당신은 도무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처럼
그렇게 떳떳해 보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근래에 와선 아무래도 저놈이, 알아선 안
될 일을 좀 알고 있지 않나 하고 잔뜩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당신의 행태가 실은 여간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나는 언젠가 당신께 무례를 무릅쓰고 아 무엇 때문에 그까짓 상대도 안 되는
빨갱이 그것들과 기한도 없이 그렇게 여러 번 만나서 쑥덕공론을 할 필요가 있느냐
하고, 왈칵 뭔가를 토해내듯 말한 적이 있잖습니까. 그러자 당신이 그때 내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넌 걱정 마. 네 할 일이나 해. 나만 믿고 말이다. 내 계산이
얼마나 빠르다고 내가 손해 볼 일이야 하겠냐. 아,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너
별것을 다 걱정하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속에 맺힌
말을 한마디 불쑥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았었습니다. 당신의 체면을
봐서라기보다는, 내가 태어나던 그 옛날, 너와 나는 한몸이다. 평생을 함께
가자꾸나 하시며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당신의 말씀이 하나의
믿음이 되어 내 온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신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얄궂은 얘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별의별
흉흉한 소문이 다 퍼지더군요. 당신이 공연히 자신의 힘만 믿고 빨갱이 그것들과
계속 어울리다간 결국엔 그것들이 깊이깊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둥
혹자는 또 동시대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 생전에 쥐란 놈이 고양이를 잡아먹는
그런 해괴한 광경을 구경하게 될 것이라는 둥 하는 그런 유의 당신에 대한 험담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든 간에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만을 믿고
묵묵히 나 할 일에만 열중하지 않았습니까. 소위 그 미북관계에 있어서의 당신의
일방적인 승리만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죠?
  난데없이 그것들과 평화협정이라니요?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사실 처음엔 그런 소문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습니다. 워낙
당치 않은 소문 같아서였습니다. 늘상 당신을 폄하하는데 이골이 난 어느
불량배들이 퍼뜨린 일종의 유언비어이겠거니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날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연해지자
나는 정말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더니, 그런 말이 실감이
가더군요. 뭐 나를 배신해?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당신에 대한 실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철석같았던 멸공통일이란 신성한 명제가 일순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었으니 왜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아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하늘처럼
떠받들던 당신께 감히 이러한 항의조의 편지를 다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겠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 나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뭔가 억울하고 분한 것이 모다 화가 되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솟구치는
느낌이니깐요. 그래 그런가 당신에겐 아주 불경스런 얘기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지금 내 속마음 같아선 당장 당신의 멱살이라도 꽉 잡고 한번 다부지게 따져보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뭐 평화협정을 하겠다구? 아니 우리들의 철천지원수인 북쪽의
그 빨갱이 패들과 평화협정을 하겠다구? 누구 맘대로? 아니 당신 미쳤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사실 말이지 빨갱이 그것들과 당신이 평화협정을 한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요. 결국엔 그것들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저 호시탐탐 남침만을 노리는, 그리하여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결정적인 장애물인 빨갱이 그것들과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당신의 처지는 어찌
되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결국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이 이 땅을 타고 앉은 가장 당당한 명분이 그것들의 남침을
막아준다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전 세계에 천명한 당신의 그 당당한 명분이
사라지게 되면 어쨌든 이 땅에서의 당신의 신세는 뻔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떠나진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당신은 그 평화협정에 포박되어 이 코리아의
남북문제에 군사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길이 꽉 막히게 될지도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속된 말로 당신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요새화된 사우스
코리아를 발판으로 해서 동방의 여러 나라를 품에 안고 춤을 추려던 당신의 그
화려한 꿈도 속절없이 바람결에 흩어지고 말 테니 그것이 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법은 없습니다. 그까짓 것들을 상대로 어이없게
백기를 들다니요. 수백 년 동안 간난신고의 정신으로 공들여 쌓아온 유에스에이의
역사상엔 그렇듯 굴욕적인 패배의 기록이 없습니다. 오로지 승리의 기록만이
있습니다. 당신의 선조들은 단 한 번도 장애물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무자비 했습니다. 오로지 자기들 세상을 황금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초지일관
황금에만 매달리어 네가 죽어야만 내가 산다는 그들 특유의 그 서릿발 같은 율법에
항시 충실할 따름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런 조상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생각하면 멀리 당신의 시조랄 수도 있는 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란 분부터가 그
얼마나 황금만능의 사상을 후세에 심어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는진 아마
당신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애오라지 황금만 긁어모으면 천당에 가는 티켓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1492년 가슴에 칼을 품고 미 대륙의 한
끝자락에 발을 내디디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그는 즉시 자신이 명명한 인디오란
이름의 원주민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그 도구로 만들기 위해 온갖 흉악한 짓도 다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티끌만치라도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 즉시로 짓밟아 버렸습니다. 무슨 흉한 벌레를 짓밟듯 말입니다. 목숨을
짓밟는 방법도 얼마나 다양했던지, 찢고 찌르고 태우고 던지고, 하여 사뭇 일종의
무슨 살인축제를 방불케 했다고 하질 않던가요. 하여튼 콜럼버스 일행에 의한
원주민 숙청작업이 얼마나 민첩하게 진행됐던지 그들 일행이 들이닥친 이후 불과
오륙 년도 못되어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인 타이노족이며 아라와크족 등의
모습이 거의 다 보이지 않게 되었었다고들 하더군요. 글쎄 그 얼마나 그들에 의한
살인행위가 엄청나고 시끄러웠으면 그 흉흉한 소문이 멀리 유럽에까지 전파되어
결국 1498년, 콜럼버스를 열성적으로 지원하던 스페인의 왕실에서마저 더 견디질
못하고 그를 소환하기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그런저런 이유로 해선가, 지난
1992년 유엔에선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오백 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려다가
어이없게도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원주민들의 후예와 수많은 그들
지지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세상이 지금 얼마나 타락했으면 인권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유엔에서마저 희대의 살인마인 콜럼버스를 다 기념하려 하느냐고 완강히
항의라는 바람에 그 계획을 취소하는 망신을 당하지 않았던가요. 하지만
황금제일주의의 그 빛나는 황금 깃발을 높이 쳐들고 헌신한 당신의 선조들이 어찌
콜럼버스 일행들뿐이었겠습니까. 미 대륙이 온통 다 황금땅이라는 소문이 세상에
퍼지자 유럽 각지에선 황금에 매료되어 온몸이 흔들리는 수많은 자들이 여기저기서
벌떡벌떡 일어나 바다 멀리 저 미 대륙으로, 미 대륙으로 하며 쏜살같이 내달리지
않았던가요.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황금만이 밤낮없이 어릿거릴 뿐, 원주민은 다만
그들의 앞길을 훼방하는 장애물일 따름이었습니다. 돈벌이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은 다 치워라, 이것이 대대로 내려오는 당신 가문의 냉엄한 가훈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선조들은 이 가훈을 무조건 철저하게 실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위 그 신천지라는 미 대륙에 발을 내디딘 이후 불과 반세기도
못되어 수많은 세월 원주민들이 공들여 이루어놓은 그 유명한 잉카며 마야며
아스테카왕국의 그 문명을 그 문화를 그 종족을 거의 다 못쓰게 아주 뭉개버리지
않았습니까. 수수만년 전부터 미 대륙의 곳곳에 터를 잡고, 살인도 모르고 미움도
모르고 사고파는 것도 모르며 네 것 내 것도 없이 모다들 한집안 식구들처럼
오순도순 모여 앉아 오로지 눈부신 햇빛과 맑은 물 그리고 신선한 공기며 비옥한
땅을 선물하신 신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쉬임없이 아름다운 신전을 쌓아 올리며
춤추고 노래하던 그 신령스런 원주민들은 자기들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당신의
선조들에 의해 뭉텅뭉텅 죽어갔습니다. 당신의 선조들은 단 한 가지도 자기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없다고 울부짖으면서 죽어갔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선조들은
저마다가 다 살인의 달인이 되기 위해 그 살인술을 연마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서
원주민들의 목숨을 이용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당신의 선조들은 황금을 찾기
위해 그 광대한 중남미 대륙과 북미 대륙을 샅샅이 다 뒤지는 과정에서 어떤 이는
최소한 이삼천만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오천만 또
어떤 이는 칠천만 또 누구누구는 팔천만, 구천만 하고 모다들 제각각이라 그
정확한 수를 헤아리긴 어렵지만 그러나 인디언의 역사를 추적하는 한 연구자의
기록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컸습니다. 이를테면 1570년도의 프랑스의 한
인구통계에 의하면 당시 잉카제국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수가 약 천삼백만 명에
이르렀었다는데 그 후 오십 년이나 지난 1620년도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그 수가
급감하여 불과 칠십여만 명으로 주저앉았다고 하니, 생각하면 이러한 비극이 어찌
잉카제국에만 국한된 것이었겠습니까. 오죽하면 유에스에이에 소속된 마크
트웨인이란 한 작가는 자기나라의 국기인 성조기를 바라보며 저 성조기의 흰
부분엔 검은 칠을 해서 조의를 표하고 또 저 번쩍이는 별들 대신에 인디언들의
해골을 그려 넣어야만 어울릴 것 같다고 비아냥을 떨었겠나요. 그만큼 미제국주의
당신이 탄생하기까지의 그 밑바닥엔 정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디언들의
시신이 겹겹으로 쌓여 있다는 사실은 아마 당신이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듯 당신의 선조들은 그들의 그 다함없는 욕망을, 그 황금 덩어리를 손에 넣기
위해선 그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이 다 선이요, 정의라는 강자 특유의 율법에
충실했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선가 당신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 최고가
아니신가요. 경제력도 최고고 군사력도 최곱니다. 당신 혼자서 쓰는 국방비만 봐도
이미 전 세계가 쓰는 국방비의 그 절반 수준을 넘어섰으며 또한 세계 도처엔
칠백여 곳이 넘는 당신의 군사기지가 최첨단 무기를 자랑하며 당신의
황금제일주의를, 민주주의니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이름으로 잘 지켜주고
있잖습니까. 게다가 당신이 멋대로 조종하는 NPT, IAEA, WTO, FTA, IMF, PSI, IBR,
등등의 국제적인 협정과 규약들이 사시사철 당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질
않은가요. 그러니 이제 누가 봐도 당신을 당할 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구약시대의 삼손도 신화 속의 제우스도 그의 아들 헤라클레스도 당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도대체 당신이 뭣이 겁이 나서 그까짓 빨갱이 패들
하나 제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아니 좀 실수로 갈팡질팡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끝내 자신의 체신도 모르고 이제 와서 뭐 그것들과
평화협정을 하겠다구요. 이거 소가 웃을 노릇이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어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있겠느냐구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내가 오죽 분하고
억울하면 이렇게 몸이 떨리겠습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구요. 황금을 위해선
매사에 무자비했던 당신의 선조들이 지금 하늘에서 눈을 부릅뜨고 당신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저런 게 다 내 후손인가 해서 말입니다. 
  미친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나보고 미친놈이라니, 누구지? 지금 이곳엔 편지를 쓰는
나 말곤 아무도 없는데, 에잇 미친놈, 아니 또? 이건 분명히 당신의 목소린데요.
이상하다. 이판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이게 혹시 당신과 나 사이를
비밀스럽게 왕래하는 그런 무슨 텔레파시라는 것 아닌가요. 초감각적인 지각의 한
형태로 작용하여 꼭 실제로 지금 일어난 일처럼 착각하게 한다는 그 텔레파시라나
뭐라나 하는 것 말입니다. 텔레파시 좋아한다 미친놈, 나야말로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이놈아 남의 속도 모르고 그게 무슨 잡소리냐, 아이구 답답해. 그걸 다
편지라고 하다니. 네? 당신은 그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펴지를 이미 다 보셨다는
건가요. 이놈아 보고 말고다. 왜 편지뿐이겠니, 네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다 듣고 있다, 이놈아. 아니 어떻게요? 어떻게라니 이놈아 네 목구멍에도 네
귓구멍에도 그런 장칠 다 해놨어, 이놈아. 아, 그런 것도 모르는 놈이 북쪽의
빨갱이 머릿속을 네가 안다구? 미친놈. 아, 그러셨나요. 그럼 이제 편지 말고,
그냥 말로 해도 되겠는데요. 그럼 말로 하지 요새 누가 구질구질하게
편지질이더냐, 이 개명한 세상에 말이다. 미련한 놈. 아 참 그렇겠군요. 그럼 이제
말로 하겠습니다. 말로 말씀을 드려서 나의 이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 풀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놈아 정말 억울하고 분한 자는 네가 아니고 바로 나다 나엿!
넷? 넷은 무슨 넷이냐, 이판에. 얼른 내 가슴 좀 보란 말이다. 이 퍼렇게 멍이든
내 가슴 좀 봐. 가슴요? 안 보이는데요. 미련한 놈. 네 손바닥 중심에다 시선을
집중시키고 ‘국, 보, 법’ 이렇게 소리쳐 봐. ‘국, 보, 법.’ 아 그러니까
보이는데요. 아주 환히 보이네요. 그런데 당신의 가슴이 왜 그렇게 멍이 들었죠?
이놈아 하도 뚜드려서 그렇다, 속이 상해서, 아 북쪽의 빨갱이 패들 그것들이 글쎄
시도 때도 없이 내 앞길을 탁탁 가로막고 나서니 이거 도무지 창피해서 어디
견디겠니, 응. 뭐라구요? 아, 당신이 누군데 빨갱이 그것들을 상대로 해서 견디니
못 견디니 하는 그런 소릴 다 하시다니요. 당신과 비교하면 그것들 파리만도 못한
존재가 아닙니까. 아 그러니 더욱 답답하다는 것 아니냐. 답답하긴요. 그냥 눈 딱
감고 밟아 버리면 그만일 텐데요. 글쎄 이놈아 밟고 또 밟아도 별 효과가 없으니
내 가슴이 이 지경이 된 게 아니겠니. 넷? 넷은 또 무슨 넷이냐, 이놈아 너 정신
차리고 잘 들어. 내 말을 사실대로 끝까지 다 듣고 나서 나한테 분풀이를 하든
화풀이를 하든 해야지 너 나한테까지도 네 맘대로 하기냐. 아니 내 맘대로라니요,
제가 어떻게. 그럼 잘 들어봐, 이놈아. 너 혹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실컷
얻어맞아 픽 쓸어졌던 놈이 말이다, 이제 죽었는가 싶던 그런 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것 봤니? 넷! 못 봤는데요. 못 봤다구? 난 봤다 이놈아, 봐도 여러 번
봤어. 어디서요? 어딘 어디겠니, 영화 같은 데서 말이다. 그런 건 나도 봤는데요.
암 봤겠지, 너라고 못 봤겠니. 보안관을 후려치고 달아나던 어느 악당이 말이다.
가슴에 머리에 배에 보안관이 쏜 여러 발의 총을 맞고 완전히 쓸어졌는데도
말이다. 보안관이 놈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접근하자, 아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는 그런 놈 너도 봤지? 네, 봤는데요. 벌떡 일어나가지고는 도리어 그놈이
보안관을 죽이겠다고 똑바른 자세로 저벅저벅 다가서는 모습 말이다. 너 그런 경우
몸이 부르르 떨리지 않던? 저것이 혹시 무슨 귀신인가, 괴물인가 해서 말이다.
하지만 영화 같은 데서야 별의별 해괴한 일이 다 일어나지 않던가요. 해괴한 일?
물론이지. 그런데 그런 해괴한 일이 영화 같은 데서가 아니고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나를 상대로 해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게 어디 보통일이겠냐, 이놈아. 넷!
뭐라구욧? 당신한테 무슨 괴물이 나타난다구요? 그리고 그 괴물이 뭐 당신한테
덤빈다구요? 아니 그럴 리가, 이 밝은 세상에 괴물이라니요? 허 저런 놈 좀 봐.
북쪽의 그 빨갱이 패들 말이다. 넌 그게 괴물 같지 않던, 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여 놈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또 막고 했는데도 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그것들이 넌 괴물로 보이지 않더냐 이 말이다. 넷? 괴물도
괴물다워야 괴물이잖아요. 무슨 괴력이 있어야 괴물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것들 가진 것이라곤 기껏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그런 빈 깃발밖에 없는데 그게
어떻게 괴물 축에 들 수가 있느냐구요. 아 이놈아 그러니 더더욱 괴물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다. 네놈 말대로 그것들 가진 것이란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내가 그처럼 오랜 세월
필사적으로 그것들의 목을 짓눌렀는데도 아 글쎄 그것들이 무슨 재주로 벌떡
일어나선 도리어 나한테 주먹질을 하는 형국이니 그래도 그것들이 괴물이 아니란
말이냐, 응. 아니 뭐라구요? 필사적으로 목을 조이셨다구요? 암 필사적으로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평생을 두고 북쪽의 빨갱이 그것들을 이 지구상에서 아주 싹
쓸어버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이놈아. 그
누구하고도 뭣하나 팔고 사지도 못하게 했지, 또 그 어디서든 돈 한 푼 물건 하나
제대로 드나들지도 못하게 꽉꽉 막아놨단 말이다. 말하자면 나의 휘하에 있는 모든
나라와의 경제협력이나 기술교류는 물론 일체의 무역활동도 못하게 문을 단단히
걸어매놨으니, 아 그것들이 정상적인 생명체라면 어떻게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느냐, 이 말이야. 아무도 모르는 절해고도에 홀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그런 막다른 형편이었을 텐데 말이다. 아, 그래서 그것들이 지금 굶기를 밥 먹듯
한다고 하질 않던가요. 그것들의 유일한 재산인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것을 백날
떠들어도 아 거기에서 밥이 나오겠습니까, 떡이 나오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제 못 본 체하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것들 허기져서 모다들 비틀거리다가
결국엔 더 견디질 못하고 당신한테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을 게 아니겠습니까.
맞다. 이놈아 네 말도 맞아. 나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해마다
강도를 조금씩 높여서 그것들이 제일 싫어하는 제재와 봉쇄를 강화하게 되면
언젠가는 불현듯 내 품에 안길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틀렸어, 이놈아. 넷?
불행하지만 틀렸다구. 아이구 답답해. 아니 또 가슴을 치시는군요. 우선 답답하니
이놈아 가슴밖에 칠 게 더 있더냐. 그럼 그것들이 그런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글쎄 그런 비법이 있는지
없는진 모르겠다만 하여튼 그것들 틀렸어. 너처럼 내 품에 기어들긴 틀렸단
말이다. 내 참. 왜 무슨 일이 있으셨던가요? 있었다, 이놈아, 아 그것들이
평상시와 달리 너무나 움직임이 없이 잠잠하기에 말이다. 아 이것들 이제 더
견디질 못하고 다 뻗었구나 싶어 내 그것들의 본거지를 엿보지 않았겠니,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구요? 암 두근거리고말고다. 세상에서 내
말에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놀아나려는 것들의 말로가 그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사실을 증명하는 그 현장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겠느냐. 그랬겠는데요. 그런데 아니었다. 정작 뻗을 뻔한 자는 나였어,
이놈아. 넷? 모다 팔팔하더란 말이다. 팔팔하다니요? 그것들 멀쩡하게 다
살아있더란 말엿. 넷, 살아있더라구요? 이놈아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 나를
보더니 여기저기서 벌떡 일어나가지고는 저벅저벅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니,
양손에 무기를 들고 말이다. 넷 무기를요? 감히 그것들이, 권총 말입니까. 이놈아
권총이면 내가 그렇게 당황했겠니. 너 놀라지마, 핵무기였다. 넷! 그것들의
주제에요? 글쎄 그것들이 한 손엔 핵폭탄을 또 한 손엔 미사일을 들고 말이다.
모다들 눈을 부릅뜨고 저벅저벅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니, 괴물? 순간
나는 그것들이 괴물이란 생각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럴 수가요. 혹시 그것들이
손에 들고 있었다는 무기가 다 가짜가 아니었던가요? 모조품 말입니다. 이놈아
내가 누군데 가짜와 진짜도 못 가린단 말이냐. 다 진품이었다, 이놈아. 미사일도
핵탄두도 다 진품이었어. 뭐 진품이었다구요? 허,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것들이 그
무기를 들고 내 앞에 턱 버티고 서서는 막 으름장을 놓는 게 아니겠니. 아니
으름장이라니요. 감히 당신한테 으름장을요? 이건 뭐 쥐새끼가 고양이를 협박하는
꼴이잖아요. 말하자면 그런 꼴이었지, 내 참 기가 막혀서, 그것들이 뭐랬는데요?
글쎄 그것들이 나보고 말이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할 테니 전쟁이냐, 평화냐, 그 둘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얼른 선택하라고 막 몰아세우더란 말야, 이놈아. 아니
뭐라구요? 이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닌가요. 세상에 원 미제국주의 당신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나오는 거죠? 당신 혹시 지금 무슨 꿈
얘기를 하시는 것 아닌가요. 꿈 얘기요. 글쎄다. 나도 사실은 꿈이길 바랐었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니었어.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하단 말이다. 아이구
그것들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지다니, 빌어먹을. 빌어먹을이고 자시고 정말
그렇다면 당신 그동안 뭘 한 거조? 그것들 사전에 왜 박살을 내지 못했느냐구요.
당신에게 지금 없는 것이 뭐가 있고 도대체 못할 짓이 뭐가 있습니까. 거의 만능에
가까운 당신의 첩보기기들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시시각각으로 지구를
겹겹으로 누비며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못 들을 말이 뭐가 있고
또 못 볼 물건이 뭐가 있습니까. 특히 그것들 빨갱이들의 둥지인 그 손바닥만 한
노우스 코리아쯤이야 정말 당신 스스로 손바닥 보듯 수시로 그 전모를, 그 전모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하질 않았던가요. 그렇다면 왜 그것들이
핵물질을 만지작거리던 그 초기단계에 그걸 박살을 내지 못했느냐구요? 네! 글쎄
말이다. 맞다 이놈아, 네놈의 말이 백번 맞아. 아이구 답답해, 아 그래서
이변이라는 게 아니냐. 그것들이 핵무기를 만든 게 이변이 아니라 내가 사전에
그걸 자세히 몰랐다는 게 이변이란 말이다. 너도 말했듯이 내 첩보망이 좀
치밀하고 광범위하냐. 지금 내 수중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대한 첩보기구만
해도 CIA, DIA, NRO, NSA, FBI 등등이 밤잠을 자지 않고 있다. 이놈아. 그에
관련된 내 휘하의 그 수도 없이 많은 첩보요원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노우스
코리아는 물론 세계의 요소요소를 샅샅히 다 뒤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도 알겠지,
어디서 혹시 나를 모함하려는 세력이 나타날까 해서, 그걸 적발하려고 말이다. 아,
그자들이 첩보비로 쓰는 한 해 예산만도 오백억불인지 일천억 불인지 도무지 나도
계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놈아. 뭐 돈만 많이 쓰면 제일인가요. 무슨 실속이
있어야죠, 실속이. 아 이놈아 실속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견뎠겠냐,
내가 이만큼 견디는 것도 다 내 첩보망 덕인줄 알아라. 그럼 왜 북쪽의 그까짓
것들 하나 제압하지 못해서 그렇게 쩔쩔매시는 거죠. 평화협정이니 뭐니 하는 그런
창피한 소릴 들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첩보요원들이 북쪽엔 얼씬도 못했다
이말 아닌가요? 허, 이놈 좀 봐. 아 너까지 날 약올리기냐. 내가 북쪽에 얼마나
많은 첩보비를 처넣었는지는 너도 알 것 아니냐, 아이구 답답해. 아 그놈들이
말이다. 갑자기 그놈들이라니요? 갖가지 명함을 들고 북쪽에 들랑거리는 내 요원들
말이다. 아 그놈들이 북쪽에 다녀와서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다 똑같은 소릴
하는 것 아니겠니. 무슨 소린데요? 무슨 소린 무슨 소리겠니. 아 그놈들이 북에
가서 본 것은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그 뻘건 깃발뿐이고 또 그놈들이 북에 가서
들은 말이란 자기들에겐 선군이 제일이요, 주체가 제일이니 도대체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는 게 아니냐. 그래서요? 그래서는 또 무슨 그래서냐. 하여튼
그래서 그놈들이 가지고 오는 첩보를 다 종합해보면 결국 북쪽의 땅 위엔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별다른 것이 없고, 만약에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다 땅 밑에 있을
거라는 얘기였어 이놈아. 땅밑에요? 그렇다, 그것도 아주 깊은 땅 밑에 말이다. 땅
밑이라면 그럼 땅굴 말이군요. 하여간에 땅굴이든 뭐든 그것들의 지하에 당신을
위협하는 뭔가가 확실히 있다면 아 그걸 그냥 둬서야 되겠습니까. 무슨 짓을
해서든 당장 끄집어내야죠. 야 이놈아 뭐라구, 뭐 땅굴, 너 무슨 말을 해도 좋지만
내 앞에선 제발 그 땅굴 소리만은 하지 말아라, 알았지? 내 그놈의 땅굴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의 면전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 너도 알겠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인데
벌서 잊을 리야 있겠냐. 아, 그 북쪽에서의 금창리 땅굴 사건 말씀이시군요. 알긴
아는구나, 난 이놈아 지금도 금창리의 그 ‘금’자 소리만 들어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너무 분하고 창피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잖아요. 암 어쩔
수 없었지. 넌 그래도 그때의 내 다급했던 사정을 알아주는구나. 글쎄 그때 내
주변의 그 내노라하는 특등 첩보요원들이 금창리에서 커다란 땅굴 구멍을 하나
발견하고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구멍 속만은 꼭 들어가봐야 한다는 것
아니겠니, 직접적으로 내 생사문제와 직결된 뭔가 그런 무서운 무기가 그 속에
틀림없이 들어 있을 거라고 서두르니 말이다. 그러니 낸들 어쩌겠니, 실은 겁도
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허겁지겁 북쪽의 그것들을 찾아가서는 체신도 없이 사뭇
몽니를 부리듯 제발 그 금창리의 땅굴만은 내가 좀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댔더니 아 그것들이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쓰듯 사정이 정 그렇다면 관람료를
내고 보라는 것 아니겠니, 관람료요? 아 참 그랬었지요. 그때 일억 불인가 이억
불인가를 지불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이놈아 이억 불이 뭐냐, 삼억 불이나 줬다.
아무래도 그때 내 눈에 뭐가 씌었지, 아 글쎄 억이라는 숫자가 왠지 십이니 백이니
하는 숫자보다도 하찮게 보이더란 말이다. 빌어먹을. 그 많은 돈을 주고도 그냥 훵
하게 뚫린 빈 공간만 하나 보고 나왔으니 그때 내 꼴이 뭐가 되었겠니, 이놈아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의 웃음거리였다, 웃음거리. 아이구 답답해. 내
그래서 말인데 말이다. 네? 무슨 말씀이신데요? 너 혹시 무슨 묘책이 없겠니? 넷!
갑자기 묘책이라니요? 북쪽의 빨갱이 그것들을 아주 소리 소문도 없이 감쪽같이
해치울 수 있는 그런 묘책 말이다. 아 전쟁 말씀이시군요. 그런 걸 내게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거야 당신이 최고 권위자가 아니신가요. 그래도 이놈아
적대분자를 제압하는 술수는 네가 나보다 한 수 위라는 평판도 있어. 원 별 과찬의
말씀을 다 하시네요. 나보고 좀더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듣겠습니다. 좌우간 누가
뭐라 하든 지금까지 당신을 살찌우게 한 가장 믿을 만한 영양제는 역시 전쟁이
아니었나요. 오죽하면 세상 사람들이 전쟁, 하면 곧 당신을 연상하겠습니까.
당신이 탄생하신 그 이후의 전쟁은 대부분이 다 당신의 입김에 의해 발발했다고들
하거든요. 허, 숭한. 그럴 수가. 그래 어떤 자가 그따위 소릴 하던가 한번
말해봐라. 글쎄 어떤 자는요. 좀 멀리는 1861년의 남북전쟁도 실은 당신과 한몸인
링컨 대통령의 계략에 의한 전쟁이었다는 설이 아직도 떠돌고 있구요. 또 어떤
자는요, 1940년의 일본군에 의한 진주만 공격도 실은 당신과 단짝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음모에 놀아난 결과라는 설이 자자하다고 하거든요. 그리고요. 그래,
그리고 또 뭐냐? 그리고 또 어이없게도 6·25니, 통킨만이니, 9·11이니,
이라크전이니 하는 것도 사실은 다 당신의 입김이 작용한 참사였다는 설이 아직도
유력하게 떠돌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심지언, 심지언 또 뭐냐? 심지언 최근에
일어난 천안함이며 연평도에서의 참변도 당신의 음모가 묻어 있는 냄새가 난다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것들이 꽤 있거든요. 아니 너. 넷? 아니 너 그런 허황한
소릴 하는 놈들을 아직도 그냥 놔뒀단 말이냐? 내가 누군데 왜 그냥 뒀겠습니까.
놈들의 아가리를 꽉꽉 틀어막아놨는데도 아 자고나면 그런 놈들이 또 생기고 또
생기곤하니 참 골칩니다요, 골치. 뭐 고걸 가지고 골치라고, 그만하면 너도 이제
내 사정을 어느 정돈 짐작할 수 있겠구나. 너도 알다시피 예나 이제나 이
지구상에서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그저 예외 없이 온갖 잡것들이 나를 걸고
넘어지려고 하니 말이다. 내가 어찌 골치 뿐이었겠니, 이놈아 늘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어. 온몸이요? 그래 온몸이다. 그래서 말인데 내 근래에 와서 아주 큰
맘을 먹고 대결단을 내렸단 말이다. 넷? 무슨 대결단을요? 이제 앞으론 그 어느
놈도 감히 내 탓을 하지 못하겠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북쪽의 그 빨갱이 패들을
일거에 해치우기 위한 그런 대결단을 말이다. 넷, 지금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이제 겨우 실토를 하시는군요.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죠. 정말 고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전 세계에서 아주 터놓고 노골적으로 당신한테 반기를 들고
대드는 것들은 북쪽의 그것들이 유일하잖습니까. 그것들에게 핵무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미사일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당신과 비교하면 다 새 발의
피가 아닌가요.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그것들 당장 해치워야
합니다. 그것들 그냥 두면 틀림없이 당신한테 대재앙이 닥칩니다. 아니 이미
닥치고 있습니다. 평화협정이니 뭐니 하는 것이 바로 그 대재앙의 시작이
아닌가요. 어서 그 당신의 대결단을 실천에 옮기십시오. 급합니다. 야야야 입닥쳐,
이놈아, 급한 일이 너처럼 떠든다고 해결되냐. 미련한놈. 나의 그 대결단을 실천에
옮긴 지는 이미 옛날이다 이놈아. 옛? 실천에 옮겼다구요? 어떻게요? 이놈아 쥐도
새도 모르게 최신식 연구소를 만들었어, 아주 거대한 대연구소를 말이다. 아니
뭣을 위한 연구소를요? 뭣을 위하다니, 북쪽의 그것들을 아주 순식간에 폭삭
망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연구하는 연구소 말이다. 넷! 놀라지마 이놈아. 내
휘하에 인재들이 좀 많으냐. 천재 수재 영재 귀재 소릴 듣는 학자들 만도
각계각층에 부지기수다 이놈아. 그리고 그 어렵다는 노벨상을 탄 인재들만도 내
휘하에 삼백 명이 있는지 사백 명이 있는지도 헷갈릴 정도다. 아 그럼 그 많은
인재들이 다 그 연구소에 모였단 말씀인가요, 다는 왜 다냐, 그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한 이백여 명만이 수년간을 불철주야 연구에만 골몰했단 말이다. 이놈아.
아니 그까짓 북쪽의 빨갱이들에게 뭐가 있다고 뭘 그토록 연구한다는 거죠? 내 참.
내 참이 아니라 너 이놈 내가 누구냐. 너는 물론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세계
제일의 강자가 아니냐. 아 그러한 내가 말이다. 그것들을 반세기 이상이나 꽁꽁
묶어놓고 숨통을 조이고 또 조이고 했는데도 아 그것들이 죽기는 고사하고
아직까지 팔팔한 모습으로 평화냐, 전쟁이냐, 하면서 나한테 주먹을 흔든다면 그게
어디 보통 그냥 생명체냐, 괴물이 아니면 슈퍼맨이지. 뭐 슈퍼맨이라구요? 이놈아
슈퍼맨이든 괴물이든 뒈질 줄 모른다는 점에선 그게 그것 아니냐.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그것들을 모다 괴물 비슷한 슈퍼맨으로 만든것은 어이없게도 그것들의
사회를 뒤덮고 있는 예의 그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구호가 조화를
부려서라는구나. 넷? 아니 그까짓 구호가 뭔데요. 그것들 눈만 뜨면 그저 신들린
듯 외쳐대는 것이 선군이니 주체니 하는 그 구호 아닌가요. 맞다 이놈아, 아
그래서 문제가 아니겠니. 아무래도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그 속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거야. 그래서 우리 연구소에선 아주 집중적으로 그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했단 말이다. 말하자면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것의 그 형성 과정과 성장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의 성분과 작용을
규명해내기 위해 우리 연구원들이 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기나 하느냔
말이다. 그까짓 내가 알고 모르건 간에 그럼 그동안 무슨 성과가 있었느냐 이
말입니다.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그 정체를 밝혀낸 것이 뭐가 있느냐
이말씀이지요. 이놈아 밝혀내고말고다. 이제 완전히 드러났어, 그 정체가 말이다.
넷, 드러났다구요? 그럼 그게 혹시 혹세무민하는 어느 무당이 중얼거리는 그런
무슨 주문 같은 것이 아니던가요. 이놈아 그랬으면 오죽 좋았겠니, 그런데
아니었어. 그럼 그게 뭐라던가요? 글쎄 그게, 글쎄 그게 뭐라더냐구요? 이놈아
글쎄 그게 도깨비방망이라는구나. 넷! 도깨비방망이라니요? 너 이놈
도깨비방망이도 모르느냐. 금 나와라 뚝딱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딱
하면 은이 나온다는 그 도깨비방망이 말이다. 넷, 그렇다면 큰일인데요. 이놈아,
큰일이면 좀 큰일이냐. 특히 그 방망이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아주 질기디질긴
한으로 사무쳐 있더라는구나. 아니 한이라니요? 원한 말이다. 수수백 년 동안 주변
강대국들한테 예속되어 단 한 번도 제놈들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 원한이
뭉치고 뭉쳐서 이젠 아주 금강석보다 더 단단해 젔더라는 거야. 뭐
금강석보다요? 그렇다니까, 이놈아. 아 그래서 그런지 그것들의 그 주체니
선군이니 하는 구호가 세상이 떠들썩하게 들리면서부터 어쩐지 하늘과 같던 내
값어치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란 말이다. 값어치가요?
그렇다니까. 저 멀리 중동이니 아프리카니 중남미니 하는 데서는 물론, 심지언
그동안 내 수중에서 놀던 내 동맹국이라는 것들까지가 내가 뭐라고 하면 전처럼
고분고분하지가 않거든. 특히 나를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유엔이라는
데서까지도 감히 내 제안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생기는 것이 아니겠니. 이게 다 내
짐작엔 북쪽의 그것들이 미제 망하라 하고 그 만능의 빛나는 방망이를 뚜드려댄
탓이 아닌가 해서 이거 도무지 불안하여 잠도 제대로 못 잔단 말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요즘엔 나보고 뭐라는지 알겠니? 뭐라는데요? 글쎄 아 그것들이 이젠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고 떠들더란 말이다. 그것도 다 그 희한한 방망이의 조화가
아니겠냐. 그까짓 핵융합요? 허, 이놈. 너 아주 핵에 대해선 백치구나. 만약
그것들이 핵융합 기술을 터득했다면 이건 정말 이 세상에 또 하나의 태양이 생기는
것과 같은 대사변이란 말이다. 내가 궁지에 몰리는 대사변이야. 뭐라구요? 이거
그럼 당신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어서 행동을 하십시오. 우선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빨갱이 그것들이 가졌다는 그 빛나는 방망이를 뺏어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 뚜드리지 못하게 말입니다. 네 생각이 고작 그거냐. 그러니까
사우스 코리아에 아직도 나를 비방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아 이놈아 금 나와라
뚝딱딱 하면 금이 나온다는 그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만 있으면 대대손손 잘살 수
있을 텐데 너 같으면 그걸 뺏기려 하겠니,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지. 아 그럼
어쩌죠? 사실 도깨비방망이는 하느님께서 제일 착한 자를 골라 천사나 선녀를 시켜
그에게 하사하기로 되어 있잖습니까. 그런데도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빨갱이
패들에게 그걸 주다니요. 아 이놈아 그러기에 요즘은 하느님께서도 눈이 삐었다는
게 아니냐. 넷! 뭐라구요? 하느님께서도 눈이 삐었다구요. 그럼 앞으로 누가 선과
악을 구별해주지요? 이건 정말 비상사탭니다. 초비상사태라구요. 당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북쪽의
빨갱이 그것들 지금이라도 당장 해치워야 합니다. 방망이를 뚜드릴 겨를도 주지
말고 아주 순식간에 말입니다. 당신의 실력이면 가능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비장한 각오로 임하기만 하면 그까짓 것들 당신에겐 단 한 주먹감입니다. 어서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럼 평화협정이니 뭐니 하는 그런 가당찮은 말도 싹 살아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의 요점은 바로 그거라니깐요. 요점 좋아한다,
빌어먹을 자식. 너 지금 뭐랬어? 뭐 너 죽고 나 죽자라구! 아니 전쟁에 임하자면
그런 각오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미친놈. 너 죽고 나 죽을 전쟁을 내가 왜 한단
말이냐. 내 평생엔 그런 전쟁이 없었다, 이놈아. 항시 너 죽고 나 살자였다.
알았니? 너 죽고 나 살자였단 말엿. 아 이놈아 그런데 적대관계 사이에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전쟁이 영 어렵게 되었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그렇다고 너 살고 나
죽자 식의 전쟁은 절대로 선택할 수 없을 거고,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뻔하지 않느냐 이말이다. 뻔하다구요? 암 뻔하구말구다. 아 누가 봐도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식의 전쟁을 택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느냐 이 말이다. 뭐라구요?
너도 살고 나도 살고 하는 식의 전쟁이 그게 어디 전쟁입니까, 협상이지. 아
이놈아 협상보다 더 어려운 전쟁이 어디 있냐. 그야말로 생사를 건 줄다리기다.
아무튼 협상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요. 협상을 해서 평화협정으로 가겠다는 얘기가
아니냐구요. 너 이놈 평화협정 때문에 머리가 아주 돌겠구나. 아 평화협정이든
전쟁협정이든 그 길이 내가 사는 길이라면 너 같으면 어쩌겠냐. 한번
부딪쳐봐야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던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느냐구요? 아 이놈아 나의 미래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너의 미래까지 왈가왈부하겠어. 하여튼 요즘 세월이 하 수상하다니 너 몸조심
하거라. 나는 지금 너하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바쁘다, 아주 바빠. 나도
이제 내 살길을 어서 찾아봐야 될 게 아니겠니. 나도 이대로는 영 불안해서
못살겠다. 그것들이 언제 또 그걸 뚜드리며 무슨 짓을 할는지. 자 그럼. 아니 자
그럼이라니요. 당신 그럼 지금 어딜 가신다는 건가요? 나하고 할 말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요. 아니 벌써 저기 가네, 저기. 아 여보세요. 하던 말이나 다
끝내고 가셔야조. 아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허 혼자서 그냥 가네. 저 혼자만
살려구 그러나. 아 여보세요 아니 저것 좀 봐. 저것 그냥 가네. 아니 저것 저것 영
상종 못 할 종자 아녓! 쯧쯧.   

                                                       -끝-      

실천문학 <통권 101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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