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회 민족학교
강 의 록<3-3>
**********************
          2002. 6. 25
 

         <제목> 민족교육의 과제
         <강사> 이 수 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Ⅰ. 참교육운동과 민족교육 

‘우리는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선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령 3)
  1989년 전교조 창립시 내세운 강령이다.  
  창립 13년인 올해 전교조는 참교육실천 강령을 제정하면서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이 우리 교육의 역사적 소명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1987년의 위대한 6월 국민항쟁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 사회의 억압과 차별,
비인간적 요소의 척결과 민족화해와 통일 문제에서의 주요한 진전이 있었지만,
통일도 아직 이루지 못했고, 민주주의의 알맹이도 실현하지 못하였으며, 경쟁은 더
치열해져 비인간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이
여전히 우리의 교육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전교조가 추구하는 참교육에서 '민족교육'은 강령의 첫 순위일 뿐 아니라, 금년
제정된 실천강령에서도 첫 순위에 올라 있다. 실천강령 제2항은 "우리는 민족의
자주성 확보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교육을 실천한다."이다. (* 실천강령
1항은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상을 추구한다'로서 추구하는
인간상을 언급한다)
  이렇게 민족교육의 문제를 전교조가 강령에서나 실천강령에서 제일 먼저
앞세우는 것은 한반도에서 제반 사회모순을 불러일으키고 제반 사회모순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민족 문제라 하면, 가까이는 민족 경제를 급속히 세계
자본(미국자본)에 예속당하고 하며 민중들의 삶이 파탄에 빠뜨리고 있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신제국주의 침략문제와 미국 부시 정부의 세계 전략과
냉전세력의 정략에 의해 한반도 화해와 평화통일로의 진전이 발목잡히고, 한반도의
전쟁위험이 높아지는 문제를 들 수 있겠고, 멀리는 전반적으로 사대화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와 의식의 문제, 역사 인식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교육에는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족 문제는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교육모순을 형성하고 있다.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민족교육의 과제들을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Ⅱ. 민족교육의 과제

  1. 친일, 친미 사대주의의 교육사 청산 ; 교육의 자주성 회복의 과제
  
  한국의 교육제도는 일제시대 교육제도를 이어받고 거기에 미국의 교육제도가
가미되어 기형적으로 이루어진 사대주의 교육제도이며, 교육의 지배 세력 역시
일제시대 친일인사들이 기본 뿌리가 되어 8·15이후 미국에 유학하고 온 인사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점령 후, 총독부 관리를 그대로 미군정 관리로 앉힌 것처럼,
친일교육자들을 그대로 교육관료로 앉혔으며, 한국의 교육지배를 위해 소위
'국립종합대학교설치안'을 만들어 당시 주요 대학들을 통폐합해 국립종합대학을
만들고 총장에 미국인을 앉혔다. 이에 대항하여 전국의 교수-교사, 학생들이
강력하게 들고일어났고, 이 싸움에서 무려 1500여명의 민족적 교육자들이 교단에서
추방되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1차 교육대학살이었다. 
  이 학살에 이은 분단과 전쟁의 과정에서 교육계에선 민족 자주적 세력이 거의
말살당하고, 그 결과 이승만 정권의 지배세력이 그런 것처럼, 교육계 역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친일파가 한국 교육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일제식 교육제도를
온존 강화하였다.
  이는 유명 학교 설립자와 대학 총장을 지냈던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금방
확인된다.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 이화여대 총장·이화·금란·영란여중고 이사장
김활란, 20년 이상 서울여대 학장을 지낸 고황경, 덕성여대 설립자 송금선,
성신여대 설립자 이숙종, 상명여대 설립자 배상명, 중앙여중고·추계학원 설립자
황신덕, 광신학원 설립자 박흥식....... 모두 유명한 친일인사들이다. 이런
유명인사들뿐 아니라 많은 일제시대 친일지주들이 토지개혁 당시 학교를 세워
토지를 학교재단 재산으로 빼돌리는 편법으로 학교를 이용하였다. 때문에 사학에는
친일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 
  학교 설립자만이 아니라 학계의 지배 세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제명, 박태준
등 친일음악인과 그 제자들이 한국 음악계의 거장으로 음악을 지배해왔고, 김은호,
김기창 등 친일 미술인과 그 제자들이 한국 미술계를 주도해왔다. 그리고
60-70년대를 거치면서, 그 제자들이 미국 유학을 통해 친미 사대세력들이
한국교육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때문에, 한국 교육에는 등교시 규찰, 애국조회 시 국기에 대한 맹세 등등 일제
시대 황국신민화 교육의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몇 년 전 열풍처럼 불다가
지금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 '열린교육'처럼, 미국에서 한 때 유행한
교육정책이나 사조가 아무런 비판 없이 한국교육에 도입되어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고, 친일파에 대한 비판이나, 미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비판이 철저하게 금기로 있는 실정이다. 
  친미사대에 의해 찬양되며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소위 세계화 정책은 교육에서도
이런 사대주의적 정책을 제도화하고 교육철학화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소위 세계화시대에 강대국에게 민족의 생존과 운명을 맡겨두지 않고,
우리 스스로 민족의 생존과 운명을 책임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민족 자주성의
회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교육적으로는 우선 '사대적 의식’을 벗고, 민족
자주의식을 갖게 하는 교육 개혁이 절실하며, 근본적으로는 사대주의적 인사들에
의해 장악되어진 교육계의 혁신이 필요하고, 외국제도의 이식에 의해 뒤틀어진
교육제도를 한국적 현실에 맞게 주체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교육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것은 민족교육의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전략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 반공, 냉전적 이데올로기 대결의 교육사 청산 ; 화해, 평화통일 교육의 과제

  친일, 친미 사대주의 교육사는 동시에 반공, 냉전적 이데올로기 대결의
교육사이기도 했다. 친일파는 반공을 내세우며, 분단정권 수립과 전쟁과정에서
소위 '애국자'로 변신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층이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반공과 냉전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생존의 철학으로 체화되고, 이론화되고,
신념화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류를 이룬 교육계에선 당연한 결과로 반공,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신성한 지위를 갖는 도그마적 교육내용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그간
우리 교육에서 친일파나 미국에 대한 비판이 금기로 되었던 것처럼, 똑같이 북에
대한 칭찬이나 민족 공존적 통일을 교육하는 것이 역시 금기로 되어왔던 것에서
분명해진다. 
  교육계에서 반공, 냉전의식의 위력은 소위 '지성인'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비합리적인 힘을 갖고 있다. 지난해 한완상 부총리가 '창발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고, 대학교수, 교장, 교감 등이 주력을 이루고 있는 한국교총으로부터
'색깔이 의심스럽다'는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교육부의 한 관리는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인데 하며
반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부끄럼 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교육계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경기, 강원, 충청도 등 산간지역 초등학교에 가면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교정에 버젓이 세워져 있고, 강원도 이승복어린이기념관에는 해마다 수만
명의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하며, 이승복 어린이 추모 글짓기 대회가 전국적인
행사로 열리고 있다.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외쳤다는 것의 진위를 떠나,
이승복 어린이를 반공투사로 내세우고, 애국적 삶의 모범으로 치켜세우는 행위는
교육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승복 어린이는 사망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로서 정치사상을 이해하고 신념화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복 어린이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세뇌교육화된 반공교육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의식 없이
이승복 어린이가 기려지고 있는 것은 우리 교육계가 반공, 냉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교육적인 최면에 걸려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제도화된 반공, 냉전의식을 그대로 두고 21세기 민족의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창출하는 화해평화통일의 시대로 나가갈 수 없다. 
  6·15남북공동선언에 의해 형성되어 가고 있는 화해평화통일의 시대는 이념과
체제대결을 앞세웠던 냉전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문화를
요구한다.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부정하고 경쟁하여 이기려는 사고와 문화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상대의 모습을 존중하고, 서로의 견해 차이를 다툼이 아닌 상호 타협과
중재로 해결해나가는 공존과 상생의 지혜와 문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 21세기
세계 속에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세계 속에 3류, 4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화된 냉전적인 대결적 사회문화를
상호존중의 문화, 화해와 상생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바꾸어 평화통일로 나가는
길을 닦고 준비하는 민족교육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좀더 구체화하면,
그간의 냉전적 통일교육을, 화해교육, 평화교육, 공존의 통일교육으로 변화시켜
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그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비합리적 냉전의식을 정리하여가는 데서
출발하여  남북의 공조를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계 주류 인사들의 의식변화를 필요로 한다. 

3. 국적불명의 교육문화를 넘어 정체성 있는 민족문화를 형성해가는 과제

  사대주의와 반공냉전의식의 지배는 우리의 교육문화를 국적불명의 정체성 없는
문화로 만들어버렸다. 90년대 초반까지 학교에서 풍물조차 금기로 되어왔고,
일제시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운동은 아예 교육내용과 역사에서 제외되었으며,
음악, 미술, 체육 등 감수성을 기르는 모든 교육분야에서 서구적인 것들이 압도적
비중으로 교육되어 왔다. 잘 알다시피 우리말조차 영어 또는 영어 번역어가
압도적으로 많아져, 교사와 학생들은 개념을 가르치고 외우는 데에만 엄청난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 도를 넘어서 이젠 영어
공용화론이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이런 정체성 없는 교육문화(사회문화)는 민족교육을 그 기초부터 허무는 무서운
힘이다. 

  남측의 통일교육은 민족동질성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민족문화라고 할만한 정체성을 문화를 뚜렷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 정체성
있는 민족문화 형성 없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것은 허구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족 동질성을 형성해줄 정체성 있는 민족문화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교육, 민족문화운동이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Ⅲ. 민족교육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몫

  우리 민족은 지난 100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간섭으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민족분단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로운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 보통 사람들은 기쁨과 평안보다 괴로움과 불안이 더 많은
삶을 강요받았다. 우리의 이러한 역사적 경험의 특수성은 '민족의 자주권 확보와
근대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양대 과제를 남겼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국가와 민족의 가치가'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는
지구화(globalization) 시대에도, 운명적으로 한반도에 태어난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해결과제이다. 
   반세기를 넘기도록 우리 겨레의 삶의 질곡으로 작용한 분단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보편적인 세계의 발전에 지체된 왜곡된 사회 속에 살면서 끝없는
전쟁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민족 자주화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운명은 주변 외세에 농단되었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외세의 한반도 정세 개입력이 약화되어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주체성을 갖고 민족적 단결을 이루어간다면 민족문제 해결의 길은 성큼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사들이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주요한 일은 앞서 말한 민족교육의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것이다. 민족문제의 해결이 지난 한 세기의
과제였으나 아직도 해결의 길이 멀 듯, 민족교육의 과제해결은 아직도 그 길이
멀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반민족이고, 사대주의적이며,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 있는 역사는 지배층이 아닌, 억눌린 민중들이
만들어왔다. 갑오농민전쟁, 3·1운동, 해방공간에서의 투쟁, 4·19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등등...... 민족교육의 과제 역시, 우리 교사들이 민중들과 함께 새로이
만들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우리 교사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역사의 진보,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할 역사적인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