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115
글쓴날 : 2003-11-20 10:33:58
글쓴이 : 사월혁명회 조회 : 9256
제목: 꽃다운 여중생 진영숙 열사의 유언

' 꽃다운 여중생 진영숙 열사
4월혁명 43주년을 앞두고

2002년에 우리의 꽃다운 어린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43년 전 4.19 당시에는 여중생 진영숙 양이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시위대에 참가하여 "생명을 바쳐" 싸우다가 총탄을 맞고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당시 한성여중 2학년생이었던 진영숙 양은 4월 19일 거리에서 수많은 언니, 오빠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압제자들에 대한 분노와 가슴속에 맥박치는 정의감과 민족애로 온몸이 불타올랐다. 진영숙 양은 학교 친구들과 데모에 참가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집에 들러 마침 출타 중이던 어머니에게 결국 유서가 되고 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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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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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숙 양은 황급하게 이 글을 남긴 후 학우들과 함께 데모에 나갔으나 진압에 나선 군경에 밀려 이날 미아리 야산에서 총탄을 맞고 꽃다운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4.19때 경찰의 총탄으로 186명이 목숨을 잃고 6천여명이 부상했다. 지금 수유리 4.19 묘소에는 진영숙 열사를 포함하여 228명의 영령이 모셔져 있다.)

진영숙 양은 그저 우연히 데모에 휩쓸려 나갔다가 유탄에 맞아 숨진 철없는 여중생이 아니라 결연히 민족 해방을 위한 항쟁에 나서 목숨을 바친 우리 민족의 진정한 열사였다. 실제로 4.19는 단순히 이승만의 3.15부정 선거에 항의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외세의존의 분단 독재자 이승만 정권을 타도한 위대한 혁명이었다.

진영숙 열사가 지금 살아있다면 5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어, 구천에서 효순이 미선이의 넋을 어루만져주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진영숙 열사의 겨레 사랑과 민족애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뜨겁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003년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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